우리동네 슈퍼스타 소개 Team Justice Story

더디지만 함께 가는 ‘협동조합’처럼, 시민들과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는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양수일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평화시장 노동자들은 전국연합노동조합 청계피복지부를 결성한다
. 이소선 어머니와 전태일 열사의 동료들이 만든 노동조합은 70년대 임금인상 투쟁 및 노동시간 단축 투쟁 등을 벌이다 1980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산을 당했다. 청계피복노조는 비공식적으로 조직을 유지하다 1988년 종로구청 농성을 통해 노조 합법화를 이루어냈다.


 정의당 남양주시위원회의 양수일 위원장도 청계피복노조 조합원 출신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중퇴하고 14살부터 봉제공장에서 일한 그는 16살에 검정고시를 치르고 법대에 진학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야학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연이 되어 17살에 노조에 가입하였으며 1997년 모범공장을 창업하기까지 십 년 넘게 청계피복노조에서 활동했다. 노조상근자를 거쳐 부위원장까지 맡으며 핵심간부로 활동했으며 그는 서노협, 전노협 선봉대 활동도 마다치 않았다. 노조에서 함께 활동했던 조합원을 만나 결혼까지 하였다. 지금의 양위원장이 있기까지 청계피복노조는 삶의 동료이자 스승이었다. 그 때 만난 재단사, 미싱사 등 일곱 명은 바보회란 이름으로 27년째 모임을 이어나가고 있다.

 1997년 그가 세운 모범공장은 노동자들이 모여 출자를 해서 회사를 세운 것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협동조합과 같은 형태였다. 몇 명이 함께 출자해서 공장을 내기로 했는데, 사정들이 여의치 않아 결국 혼자 출자를 하게 됐고 어쩌다 보니 봉제공장 사장이 되었다. 지금의 협동조합처럼 공임을 투명하게 공개했고 수익이 나면 분배도 했다. 그렇게 6년을 해온 봉제공장은 의류산업생산시지가 중국으로 넘어가며 어려워졌고 2003년 문을 닫게 되었다.
 

 
 주거문제로
2000년도 남양주로 이사를 왔던 그는 봉제공장이 문을 닫고 새로운 삶을 모색하였다. 때마침 양평과 남양주 일대의 친환경 농민들이 영농조합을 구성해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농사를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 벗하며 생명을 키우는 공동체 생활이 그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팔당생명살림 협동조합’(이하 팔당생협)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8년간 그는 열정을 다해 일했고 사무국장을 맡을 정도로 협동조합에서 그는 높은 신뢰를 쌓아갔다. 그러던 중 MB정권과 함께 시작된 4대강 사업으로 많은 토지가 수용되었고 협동조합의 생산지도 절반 이하로 줄어들게 되었다.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 생산자들과 대책기구를 구성하고 반대운동도 했지만, 결국 4대강 사업은 강행됐다.

 
 생산지가 줄어들고 생산량이 감소하다 보니 협동조합은 위축되었고 그가 해야 할 일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래서 그는 팔당생협을 그만두게 되었고 다른 일 찾아보던 중 팔당생협과 식자재를 거래하고 있던 해피브릿지에 자리가 나 그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피브릿지는 국수나무’ ‘화평동 왕냉면의 프렌차이즈로 유명한 회사인데, 당시 대표이사를 맡았던 분이 그에게 회사를 생산자협동조합으로 전환할 계획이라며 협동조합에 밝은 그의 합류를 요청했다. 해피브릿지에 합류한 그는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직후 201387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해피브릿지 노동자협동조합을 창립을 위해 노력했고, 지금까지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해피브릿지 협동조합은 3년 이상 근무한 직원 중 1천만 원의 조합비를 내야 하고 협동조합에 대한 공부도 필수적으로 해야 한다. 이사장 인선도 투표를 통해 결정하고 년간 사업계획도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이사회 이외에 평의회를 별도로 두고 있어서 평 조합원들의 의사가 공식적으로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회사에서는 주요 임직원들이 스페인의 유명한 협동조합인 모드라곤을 방문하기도 하고 그곳의 대학교수를 초빙하여 교육을 받고 있다.


 

 그렇게 8년간 해피브릿지 협동조합에 집중하여 살아오다 201512월 정의당 남양주시위원회 창당을 하며 정당활동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2016년 총선을 치루면서 젊은 당원들의 자발성과 헌신성에 놀랐으며 진보정당 원년멤버인 자신은 한발 뒤로 물러나 앉아 구경만 하는 듯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중 지역위원장이 사퇴하는 일이 발생했고, 그때 그는 용기를 내 지역위원장 보궐선거에 나서게 되었다.

 남양주시위원장에 당선되고 17개월의 시간 동안 그는 지역의 변화를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였다. YMCA, YWCA, 생협 등 시민사회단체와 연대 활동도 많이 하고 신입당원교육을 통해 당의 인재를 양성하는데도 노력을 다하였다. 그럼에도 남양주시의 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방정치가 바로 서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정의당이 지방의회에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출마를 결심했다.
 
 토건위주의 개발정책으로 일관하는 기득권 양당의 정치세력들에게 남양주의 맡길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동안 보아온 지방의원들은 개혁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이권경쟁을 하고 해왔다. 양 위원장은 남양주시정의 변화를 위해서는 시민들의 의견과 요구를 반영하는 의정활동이 필요하다며, 시민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시의원이 되겠다는 생각이다.
 
 또 그는 협동조합에 대한 전문성을 살려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조례를 만들고 협동조합의 강화와 확산을 중점적으로 해나갈 생각이다. 아울러 공공급식확대, 무상교육 등 공공교육정책을 강화하고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 차별받는 소수들의 권익을 옹호하는데도 힘을 기울일 생각이다.
 


 선거운동도 피켓팅보다는 대화를 많이 하며 유권자들에게 파고들 계획이다. 일방적으로 우리의 주장을 외치는 방식보다는 대화를 통해 유권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그 속에 대안이 있고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시민의 눈높이에서 시민과 함께 협동하며 그들과 함께 지역의 문제, 삶의 문제를 해결해나가고자 하는 것이 그의 정치다. 시의원 혼자 판단해서 알아서 하는 식으로는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로 성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딘 걸음이지만 함께 가는 협동조합의 원리가 이 사회 전반에 깃들 때까지 그는 묵묵히 그가 바라는 정치의 길을 갈 것이다. 그의 도전에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양수일의 초간단이력
) 정의당 남양주시위원장
) 팔당생명살림 협동조합 조합원
) 해피브릿지 협동조합 조합원
) 청계피복노동조합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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